뚄뚀의 세상

뚄뚀가 하는 것을 모아 전하는 곳

글쟁이 5

마음을 쓰다 : 생겨나다

드라마를 보면 아빠와 다정히 있는 부녀 혹은 부자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함과 동시에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주인공이 가끔 등장한다. 나에겐 처음부터 부(父)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고 컸고 성인이 되어서야 '부'의 죽음으로 인한 빚의 상속을 독촉받는 서류로 '부'의 존재를 알았다. 이러해서 나는 그 주인공의 마음을 일절 공감하지 못했으며 어떠한 감정조차 생기지 않았다. 애초에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전적 또 다른 부(富)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수저론 자체를 모르고 컸다. 어릴 적 나를 비롯한 어린 나의 지인들 모두가 가멸게 태어나지 않았으며 청소년기에도 '부'로 인한 등급에 차이를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차이로 인한 차별을 스스로 무시하고 살아온 건지도 모르..

마음을 쓰다 : 변한 마음

그가 쳐주던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불 꺼진 내 방에서 그와 나누던 통화가 즐거웠고 가로등 불빛 아래 그는 이뻤다 흔들의자 위에 함께 앉아있던 순간이 따뜻했다 그와 나는 변했고 다퉜다 다투다 영영 멀어졌다 좋았던 마음이 변했다 나눴던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날 괴롭혔다 한참을 울었고 한참을 그리워했다 그때의 나와 너는 없다.

마음을 쓰다 : 다시 일어나는 법

저 날은 방전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워 몸서리쳐지는 날,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꼼짝도 하기 싫은 날, 의미 없이 시간만 태우는 날. 꾀죄죄한 차림을 하고 부스스 일어나 문득 거울을 봤는데 이렇게 한심할 수가 있나 싶다 작고 쓴웃음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려 차디찬 냉수를 들이켜도 소용이 없었다 찬바닥 구석에 묵직한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과거에 있었다 기억의 감정 조각조각들이 구분 없이 마구 섞여서 밀려왔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반짝이는 순간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 자신을 위로했다 불현듯 이 순간을 메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눈을 뜨고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다시 펜을 잡았다.

숨막히는 코로나시대

2019년의 끝자락 12월 어느날 나는 결혼을 하였다 긴 연애 끝 결혼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고단했다 큰 메리지블루를 겪었고 준비하는 일 년 가까이 늘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 미간에 주름이 박혔다 정신없이 식을 치르고 또 정신없이 급하게 신혼여행지로 떠났었다 신혼여행 내내 아팠더랬다 얼마 가지 않아 설날이 왔고 그때쯤 코로나도 함께 왔다 그게 나의 마지막 여행(?)이다 난 겁이 무척 많고 예민한 성격이라 코로나 초기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지냈다 사실 조금 지치기도 한다 누구나 그러하겠지 극장도 공연도 축제도 휴가도 아주 소소한 데이트마저 급작스레 바뀌어버린 현실이 그래서 소통이 참 고팠다 재미없는 나의 하루의 이야기를 들어줄 어떤 것이라도 필요한 순간들이다